반갑습니다.

단군의 건국이념으로 알려져 온 홍익인간(弘益人間) 이화세계(理化世界)의 풀이에서 ‘弘益’ ‘理化’를 중심으로 해석을 한다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고 이치로서 세상을 다스린다.”(대부분 이렇게 받아들이고 있더군요.)

저로선 지혜로웠다(?)는 단군이 弘益 理化라는 구호성인 행위에 초점을 두었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저는 단군이 꿈꾸고 바라는 인간상과 세상 모습을 弘益人間 理化世界로 표현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 弘益人間 理化世界에서 중심 단어를 人間과 世界로 재구성하고, 수기치인(修己治人)의 맥락에서 해석을 한다면 “(먼저) 넓고 유익한 인간(이 되어), 이치로서 다스려지는 세상(을 만들자)”로 되군요.
그러니까 弘益이라는 전제가 이루어져야 비로소 理化라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弘益하고, 다스리자’와 ‘人間이 되고, 세상을 만들자’는 너무나 차이가 많답니다.
존재상태가 아니라 행위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은 수단이 목적이 되는 것이지요.
바로 옆 사람 000을 사랑하는 존재가 되는 것보다 ‘인류를 사랑하자’에서처럼 그 구호에 나 자신은 제외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인류 전체를 사랑하는 데는 다른 이들의 책임도 있으니 나는 꼭 적극적으로 실천하지 않아도 된다고 여김.)
즉 일발필중도 못하면서 백발백중을 꿈꾸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같은 맥락으로 弘益人間은 모두를 ‘弘益하자’가 아니라, 개개인이 홍익하는 태도로서 존재하라는 것이지요.
이치로 다스려지는 세상을 만들려면, 자신의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손(損)을 끼치는 게 아니라 유익하게 더하는(益)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이 弘益의 태도가 아니라면, 나 자신의 삶의 방향은 이치로 다스려지는 세상 쪽으로 향하고 있지 않음이 명확해지는 것이지요.

자신과 세상을 ‘홍익하자’, ‘이화하자’라는 것을 통해 인식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과 세상을 弘益과 理化로써 점검하는 기회로...

항상 감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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