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재해석
罪莫厚於甚欲(죄막후어심욕)
咎莫僭於欲得(구막참어욕득)
禍莫大於不知足(화막대어부지족)
知足之爲足(지족지위족)
此恒足矣(차항족의)
죄는 지나치게 욕구하는 것보다 더 두터운 게 없고
허물은 얻으려고 애쓰는(하는) 것보다 더 어긋나는 게 없고
화(禍)는 만족할 모르는 것보다 큰 것이 없고
족함을 알고 그것에 만족하면
늘 족할 수 있느니라.
◐ 해설 ◐
이장은 애써 하는(欲) 것의 귀결과 현재의 감사에 대한 것이군요.
노자의 대부분의 글이 각 ‘장’들마다, ‘구절’들 상호 연관이 없는 것이 드물지요.
이장에서 ‘罪-咎-禍’의 순서는 심(心)-신(身)-사(事)의 연관이 있군요.
마음으로 죄를 짓고, 몸으로 허물은 드러나고, 사건으로 화를 당하지요.
또 이 장 전체적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겨서 ‘애써 함(欲,Doing)’의 행위 상태와 현재에 감사해서 ‘만족 함(足,Being)’의 존재 상태의 대비를 이야기 하고 있군요. (‘에리히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를 참고)
◐ 罪莫厚於甚欲에서
우선 저는 처음에 노자는 ‘하는(欲)’ 것 자체 문제 삼고 있지 않은 것으로 여겼답니다.
단지 ‘과도하게 하는 것’만이 罪로서 귀결된다고 언급한 것으로 받아들였는데, 그래서 저는 罪라는 것으로 노자께서 협박(?)을 하는 것으로 해석을 했답니다.
그러나 여유를 두고 곰곰이 살펴 본 바...
‘죄는 ~보다 두터운 게 없다’라는 비교방식 서술임으로 ‘지나친 욕구’가 더 두텁다고 한 것은 그냥 ‘욕구(欲)’조차도 ‘위(爲)’처럼 경계할 것으로 지적을 하고 있는 것이더군요. ‘뭔가를 한다’는 게 (의식적이든 잠재의식적이든)반대급부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살펴보면 노자는 무위(無爲) - 물위(勿爲) 망위(亡爲) 불위(不爲)를 일관되게 주장하지요.
그러할진대 ‘지나친 욕구’(甚欲)는 너무 두터워(상대적으로 ‘욕구’ 자체 보다) 그것을 덜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지요.
즉 ‘지나친 욕구’는 욕구가 중독이 된 상태로서, 당사자는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길 뿐만 아니라, 나아가 자신의 욕(欲)을 정당화하려고 주변의 다른 이에게도 ‘권유’를 넘어서 사실상 ‘강권’을 하게 되지요.(알코올 중독자가 자신이 중독되어 있는 사실 인정이 쉽지 않은 것처럼...) 그는 자신의 가치관이 옳은 것이니, 나머지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당연히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자신에게는 ~~가 진리’보다는 ‘~~가 진리’라면서 ‘당신도 마땅히 따라야할 진리’라는 명분으로 다른 이의 추종을 필요하게 된 상태이지요.
진리는 누구의 인정이나 증명이 없어도 자명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외부의 인정을 필요로 하는 환상 속에서 살게 되지요. (전도, 포교, 교화, 포덕이 대부분 이런 수준이지요. 물론 아닌 경우 빼고)
‘신나이’를 전파한다고 하는 것도 자세히 살펴보면 같은 행위 상태이지요.
다들 아시다시피 ‘신나이’에서도 Doing로는 결코......
즉 성실하려고 애쓰는 것과 성실한 존재가 되는 것은 다르답니다.
전자는 외부의 시선에 마음 쓰는 것이며 후자는 내면으로 향하는 것이랍니다.(저의 이런 글쓰기도 Doing에 해당 될 수 있음을... 조심으로...)
◐ 咎莫僭於欲得
이제 벗기 어려운 ‘지나친 욕구’(甚欲)는 무위(無爲)의 반대 방향인 뭔가 결과를 얻으려고(得) 기대하는(欲) 방향으로 진행되어, 상대와의 관계는 상호 기대로 인해 결과물을 얻는데 급급하여, 결국 의지대로 되지 않는 것으로 귀착된다.(아닌 경우 빼고)
그래서 의도대로 되지 않았을 때 결국 남는 것은 상호 비난이나 비방이라는 구설이 대부분이다. 그게 자신의 허물이 됨에도 불구하고...
◐ 禍莫大於不知足
... 그 기대가 결국 자신의 허물이 됨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자각하여 중단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그는 만족하지 못하고 반복해서 악순환의 원 속에서 맴돈다. 결국 그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것은 화(禍)를 당하고서야 혹 고칠 수 있게 된다.
◐ 知足之爲足 此恒足矣
일을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을 살펴보면 뭔가를 필요로 해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더군요.
즉 현재가 불만족하여 뭔가 필요로 하는 상태는 현재 감사하지 못한 존재 상태인 것이지요.
반대로 바램은 현재도 감사하고, 앞으로 그 바램이 이루어져도 또한 감사한 존재 상태인 것이지요.
만일 지금 현재의 상태가 감사하지 못한 상태이면, 그 부족의 상태에 따른 미래 상황이 창조가 되고, 또 그 새로운 상황에 대한 불만족으로 계속 악순환이 되는 것이지요.
이 악순환을 멈추는 방법이 지금 이 순간부터 감사의 존재 상태로 선택하는 것이랍니다.
지금 이 상황을 감사함으로 재인식하고, 관점을 바꾸고, 결정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항상 감사하고 만족함으로...
자세한 것은 신나이의 ‘부족’, ‘분리’, ‘부족’의 환상을 참고하시길.
현재 감사 -> 과거 감사 -> 미래 감사 -> 항상 감사 -> 범사에 감사 -> 현존에 감사 -> 완전히 감사(totally grateful) -> 감사 존재
http://synai.org/zb5/?sid=492&article_srl=160 참고를

문제는 너희가 변했거나, 너희 가치가 변한다는 데 있지 않다. 문제는 자신이 지금 지닌 가치관이 옳고 완벽한 것이니, 나머지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신봉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고집한다는 데 있다. 너희 중에는 지극히 독선적으로 자신을 정당화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믿음이 너희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것을 고수하라. 붙들고 포기하지 마라. ‘옳고 그름’에 대한 너희의 견해는 ‘자기가 누군가’에 대한 규정이다. 하지만 남들에게 너희 식으로 규정하라고 요구하지는 마라.
자신에게 잃을 게 있다는 생각보다 더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는 걸 가로막는 건 없다.
관계를 맺는 목적은 네가 ‘차지하고 소유하려는 것’이 상대방의 어떤 부분인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자신의 어떤 부분인지 결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축복하라, 너희의 적들을 축복하고, 너희의 박해자들을 위해 기도하라. 그들에게 너희가 가진 최상의 에너지와 너희가 지닌 최고의 생각들을 보내라.
모든 사람과 삶의 모든 환경을 선물로 보고, 천사로 보고, 기적으로 보지 못하는 한, 너희는 이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너희가 이렇게 할 수 있다면, 너희는 충만한 감사 속으로 옮아갈 것이다. 너희는 완전히 감사하게 되리니― 신의 다섯 번째 마음가짐― , 그렇게 해서 순환은 완결될 것이다.
그러니까 감사의 이 느낌은 중요한 요소이군요, 그렇죠?
그렇다. 감사는 모든 걸 바꾸는 마음가짐이다. 뭔가에 감사한다는 건 그것을 거부하길 그만둔다는 것이고, 당장에는 그것이 선물인지 명확하지 않을 때라도 그것을 선물로 보고 인정한다는 것이다.
덧붙여 말하면, 너희가 이미 배웠던 대로 어떤 체험이나 상황이나 결과에 대해 미리 하는 감사는 너희 현실을 창조하는 강력 한 도구이고, 깨달음의 확실한 표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