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이 번역팀
아래 표시 중 P는 쪽수, G는 그 쪽수 내 단락, L은 해당 단락 내 줄 수.
예를 들어 "신나이3 P16-G2-L3"이라면, 신나이3권 16쪽 2단락 3째줄이라는 의미입니다.
너희는, 죄의식으로는 시들고 죽어갈 뿐 자랄 수 없다.
너희가 구하는 것은 자각이다. 그러나 자각은 죄의식이 아니고, 사랑은 두려움이 아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두려움과 죄의식이야말로 너희의 유일한 적이다. 너희의 참된 친구는 사랑과 자각이다.
You will not grow through guilt, but only shrivel and die.
Awareness is what you seek. But awareness is not guilt, and love is not fear.
Fear and guilt, I say again, are your only enemies. Love and awareness are your true friends.
그러니 너희 역시 같은 방식으로 남들이 자신을 사랑하는지와 자신이 진실로 남들을 사랑하는지 판단 분별할 수 있다.
So, too, by the same measure, can you determine whether others love you, and whether you truly love others.
당신은 그게 완전히 문맥관계 맥락관계라고 말씀하시는군요.
그렇다. 삶 전체가 그러하다. 무엇이 “가장 좋은가 가장 유익한가”는 네가 누구고 누가 되려고 하는지에 달렸다. 너희는 자기가 누구고 어떤 존재인지 지혜롭게 판단 결정하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에게 가장 좋은 것 가장 유익한 것을 지혜롭게 선택할 수 있다.
You're saying it's all contextual.
Yes. All of life is. What is “best” depends on who you are, and who you seek to be. You cannot intelligently choose what is best for you until you intelligently decide who and what you are.
문제는 자신이 무엇이 되고 있는가 뿐이다. → 요점은, 화두는
It is all a question of what you are being.
몸의 행동만으로도 자신이 원하는 걸 가질 수 있다는 데 마음이 진지하게 수긍하지 않을 수도 있다. → 바라는
The mind may not be able to sincerely agree that the actions of the body can bring you that which you choose,
네가 자신을 위해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남에게 주어라. → 바라는
Whatever you choose for yourself, give to another.
왜 자기가 자기를 위해 원하는 바라는 것을 남에게 줄 때 진지함이 그렇게 중요한지.
Explain to me, please, why sincerity is so important in giving to another what you choose for yourself.
원하면, 원한다면(choose) → 바라면, 바란다면
진심으로 원해서(really want) → 진심으로 바래서
그냥 ‘자신’과 ‘되고자 선택하는 자신’을 놓고 그렇게 자주 마음을 바꾸는 걸 그만두면 된다. → 자기, 되고자 선택하는 자기
Simply stop changing your mind so often about Who You Are, and Who You Choose to Be.
너희 삶의 설계― 그 속의 사람과 장소와 사건들― 모두가 완벽 자체의 완벽한 창조자인 너희에 의해서 완벽하게 창조되었다. 그리고 너희에게서, 너희로서, 너희를 통해서의... 나에 의해서. → 너희에 의해서, 그리고 나에 의해서... 너희 안에서, 너희로서, 너희를 통해있는.
p22 g6 | The design of your life― the people, places, and events in it― have all been perfectly created by the perfect creator of perfection itself: you. And Me... in, as, and through you.
그렇다. 그게 바로 실제 상황이다. → 그런 것
Yes, that is what is so.
4. inner strength 내강(내면의 강함) → 내적인 힘, 내적 힘
5. p73; the inner strength of unity 합일의 내강 → 내적인 힘, 내적 힘
6. p73; For it is in the unity that inner strength exists, and in the separation that it dissipates, leaving one feeling weak, and powerless- and hence, struggling for power.
내적 힘은 합일 내면의 강함(內强)은 합일에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분리된 내적 힘 분리된 내강(內强)은 흩어져서 사람들이 자신을 약하고 무력하게 느끼도록 만들고, 따라서 권력 힘을 찾아 투쟁하게 만든다.
7. p74; Power comes from inner strength. Inner strength does not come from raw power.
힘은 내강에서 나오지만, 내강은 설익은 힘raw Power에서 나오지 않는다.
→ 권력은 내적 힘에서 나오지만, 내적 힘은 무력에서 나오지 않는다.
8. p74; Power without inner strength is an illusion. Inner strength without unity is a lie.
내강 없는 힘은 환상이고, 합일 없는 내강은 거짓이다.
→ 내적 힘이 없는 권력은 환상이고, 합일 없는 내적 힘은 거짓이다.
9. p74; Still, separation continues to masquerade as strength,
→ 그런데도 여전히 분리는 내적 힘인 체양 가장해 왔고,
10. p75; Understand that it is about power with, not power over.
그리고 그것은 지배하는 힘이 아니라 함께하는 힘과 관련된 것임을 이해하라.
참고; 신나이2권7장 -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권력을 택하지 말고,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권력을 택하라. And do not choose power over, but power with.
11. p76; So it was not easy for men, who were powerless, to convince other powerless men to seek power.
힘없는 무력한 남자들이 다른 힘없는 무력한 남자들에게 권력을 추구하라고 납득시키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12. p75,81; Might is right. Strength is power. & power is strength.
힘이 정의. 강함은 힘 & 힘이 곧 강함 → 힘은 권력 & 권력이 곧 힘.
나는 이 책에서 이 진리를 몇 번이고 되풀이할 것이다. 나는 이 진리를 몇 번이고 관찰할 것이다. → 나는 이 관찰을 몇 번이고 되풀이할 것이다.
This truth I will repeat over and over on these pages. This observation I will make again and again.
우리가 여기서 잊기 위해 사용했던 것이 너희 중 일부가 ‘기쁨 원리Pleasure Principle’라 부르는 것이다. → 쾌감원칙, 쾌락욕구원칙
What We used here to help Us forget is what some of you would call the Pleasure Principle.
1. 주석 - pleasure principle(쾌감원칙)
a 요약; S.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에서 가정된 원리. <쾌·불쾌원칙>이라고도 한다.
b 출처; http://kr.dic.yahoo.com/search/enc/result.html?p=pleasure+principle&pk=19067300&subtype=&type=enc&field=id
가장 고귀한 성질의 기쁨, 그런 측면의 기쁨, 신의 가장 큰 기쁨, 가장 저급한 성질의 기쁨, 육신의 기쁨, 물질의 기쁨 → 즐거움
너희는 ‘그걸 고안해낸다’. 내 말은 말 그대로 그렇다는 것이다. 너희는 말 그대로 소위 ‘차크라’의 내면 통로를 “고안해낸다.” → 로 ‘올리는 것을 생각한다.’
You “think it up.” I mean that, just as I said it. You literally “think it up” the inner pathway of what you have called your “chakras.”
너희는 자신으로 되어 가는 자신을 다시 체험하고 싶어서― 사실 이건 굉장한 체험이다― ‘우주 수레바퀴’ Cosmic Wheel 위에서 처음부터 완전히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 → 자기로 되어 가는 자신
You may wish to again experience yourself becoming your Self― it is a grand experience, indeed― and so you may start all over again on the Cosmic Wheel.
아니다. ‘업보의 수레바퀴’ 같은 건 없다. 너희가 상상하는 그런 방식으로는. 너희 중 다수는 자신이 수레바퀴 위가 아니라 디딜방아식 바퀴 위에 있다고 상상해왔다. 그러기에 너희는 그 속에서 과거 행위들이 빚어낸 업을 갚고, 어떤 새로운 업도 빚어내지 않으려고 영웅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 트레드밀
No. There is no such thing as a “karmic wheel.” Not the way you have imagined it. Many of you have imagined that you are on, not a wheel, but a treadmill, in which you are working off the debts of past actions, and trying valiantly not to incur any new ones.
a 밟아 돌리는 바퀴(옛 감옥에서 죄수에게 징벌로 밟게 한)
<운동/오락> 너비가 넓은 벨트로 된 바닥을 모터로 회전시키고, 그 위를 회전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걷거나 뛰는 장치. (국내에서는 주로 러닝머신으로 알려진 운동장치)
본 운동은 트레드밀, 고정식 자전거 에르고미터 등을 이용해 8분 운동에 3분 휴식을 원칙으로 실시한다.<한국경제. 1997. 3. 13.>
뒤에 보이는 트레드밀도 홈 네트워크에 연결돼 있어 운동 기록이 자동으로 저장된다.<동아일보. 2004. 4. 20. D1면>
“정화”따위는 존재하기 않기 때문이다. → 존재하지
그는 아마도 뻣뻣하게 굳어서 움직이지 않고 누워 있는 자기 육신을 볼 것이다. 그런데도 자신은 순식간에 방안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지 않는가! 그것은 흔히 온 방안을 말 그대로 날아다니는 체험을 한다. 그런 다음에는 공간 속 어떤 곳이든, 그야말로 순식간에. 그것이 특정한 조망지점을 바라기라도 할라치면, 그것은 순식간에 그런 체험을 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만일 그 영혼(앞으로 우리가 그것에 붙이려는 이름인)이 “아니, 내 몸이 왜 움직이지 않지?”라고 궁금해 하면, 영혼은 바로 그곳에 가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몸 바로 위에 둥둥 떠서 그 부동의 상태를 신기한 듯이 지켜보는 자신을. → 자기
The Self may see the body lying there, all crumpled up, not moving, yet the Self is suddenly moving all over the place. It has the experience, often, of literally flying all over the room- then of being everywhere in the space, all at once. And when it desires a particular point of view, it suddenly finds itself experiencing that.
If the soul (the name we will now give to the Self) wonders, “Gee, why is my body not moving?” it will find itself right there, hovering right over the body, watching the stillness curiously.
내가 네게 가고오고, 나를 부를 모든 사람에게 가게 되는 이유다.
That is the very reason I have come to you, and will come to everyone who calls to Me.
하지만 너희에게 말하나니, 낮은 의식에 둘러싸여 있을 때는 자기 개인의 이해에 머무는 편이 너희에게 이롭고, 높은 의식에 휩싸여 있을 때는 집단의식에 굴복하는 편이 너희에게 더 이롭다. → 내맡기는
I would tell you this: It is when you are surrounded by lower consciousness that you will benefit more from remaining with your individual understandings, and when you are surrounded by higher consciousness that you receive greater benefit from surrender.
신나이3 P 118-G2-L8, P119-G8-L2 영화 제목
그 영화 제목은 <꿈은 뭘 이룰 수 있나 천국보다 아름다운(1998, What Dreams May Come)>인데, 놀랍게도 방금 당신이 말씀하신 걸 영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나라면 ‘완벽한 앎’ Complete knowing 이라고 불렀을 이런 종류의 믿음은 너희가 손에 넣으려고 애쓸 수 있는 뭔가가 아니다. → ‘완성된 앎’
This kind of belief― what I would call Complete Knowing― is not something you try to acquire.
그러니 너희가 이런 일들을 할 수 있다고 ‘믿으려 애쓰지’ 마라. 대신 완전 자각의 상태로 옮아가고자 하라. 그러면 믿음은 더 이상 필요치 않을 것이고, ‘완벽한 앎’이 자신의 경이로움을 펼치리니. → ‘완성된 앎’
Do not, therefore, “try to believe” that you can do these things. Try, instead, to move to a state of total awareness. Then belief will no longer be necessary. Complete Knowing will work its wonders.
이런 상태에서 뭔가를 ‘할’ 때, 너희는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을 명상으로, 따라서 그것을 너희가 자기 영혼에게 주고, 너희 영혼이 전부에게 주는 선물, 즉 공물(供物; offering)로 바꾼다.
When you “do” in this state, you turn whatever you are doing into a meditation, and thus, into a gift, an offering, from you to your soul, and from your soul to The All.
만사가 그렇듯이 여기에도 ‘해야’ 하거나 ‘하지 말아야’하는 건 없다. 그것은 너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의 문제다.
→ 그것은 너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선택하는가가 요점(초점)이다.
As in all things, there are no “shoulds” or “shouldn'ts” here. It is not a question of what you should do, but what you choose to do.
이런 식으로 체험될 때, 삶의 모든 것이 축복 받는다. 더 이상의 투쟁이나 고통이나 염려는 없다. 오직 체험만이 있다. 너희가 원하는 방식이라면, 어떤 방식으로도 분류할 수 있는 체험만이. 너희는 그 모두를 완벽으로 분류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체험은 너희가 원하는 방식이라면, 어떤 방식으로도 분류할 수 있다. 너희는 그 모두를 완벽으로 여길 수도 있다.
Experienced in this way, everything in life is blessed. There is struggle and pain and worry no more. There is only experience, which you may choose to label in any way you wish. You may choose to label all of it perfection.
그리고 모든 관계가 그러하듯이, 우정도 보살피고 부채질하고 자라도록 놔두면, 마침내 영적 교감을 낳기 마련이니, 너는 신과 영적으로 교감하는 존재로서 자신을 느끼고 체험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로서 말하는 거룩한 교감이 될 것이다.
And, as happens in all relationships, that friendship, if it is nurtured, kindled, and allowed to grow, will produce, at last, a sense of communion. You will feel and experience your Self as being in Communion with God.
This will be a Holy Communion, for then We will speak as One.
아니다. 하지만 그건 10분의 4(미식 축구에서 쿼터백이 서있는 위치― 옮긴이)다. 이제는 엔드존(미식축구 경기장 양 끝의 골 라인과 엔드 라인 사이의 터치다운 구역― 옮긴이)으로 롱패스로 아베마리아를 던질 차례니, 쿼터백은 [안전한 데서]빈자리에서 공을 받을 사람을 찾고 있다.
너희는 자유로우냐? 비어 있느냐? 너희는 이걸 받을 수 있느냐?
나는 쿼터백이고, 지난번에 내가 너희를 쳐다봤을 때, 너희는 나와 같은 색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우리는 아직도 같은 편이냐?
No, but it is fourth-and-ten. It's time to throw a Hail Mary, and the quarterback is looking around for receivers in the clear.
Are you clear? Are you able to receive this?
I'm the quarterback and the last time I looked, you and I were wearing the same color jersey. Are we still on the same team?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진화 과정은 물론 언제나 계속되어왔다. 하지만 그 과정은 지금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새로이 휘어지고 있다. 여기 새로운 전환점이 새 모퉁이가 있다. 이제 너희는 자신들이 진화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Yes, and no. The process of evolution has been ongoing forever, of course. But now that process is taking a new twist. There's a new turn here. Now you have become aware that you are evolving.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런 공간에서부터 살면서, 특별한 결과와 바람직한 결말, 의도된 체험을 일으키고 낳는 practicing principles 원리들을 실천(실습) 연습하고 있다.
# 한번 해보는 연습과 실제로의 실천은 명백히 다름.
여기에는 어떤 판단도 없으며, 너희가 더 진화된 존재처럼 일처리하지 행동하지 않더라도― 다른 식으로 역행하더라도 반응하지 않더라도 ― 비난하거나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There are no judgments here. Nor will there be any condemnation if you do things differently― react differently― than beings who are more evolved.
마지막으로 고도로 진화된 존재는 자신과 자신을 공격하는 자가 ‘하나’임을 이해한다. 그녀는 그 공격자를 자기 자신이 자신의 상처 입었던 받은 부분으로 본다. 그 상황에서 그녀의 역할은 모든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다. ‘하나 속의 전체’가 자신을 다시 참 모습으로 알 수 있도록.
She sees the attackers as a wounded part of her Self.
# 상처를 지금 행하고 있는 공격으로 인한 상처로 오해의 소지가 있음.
사실 사랑이 깊다면 말은 불필요하다. 그리고 이 공리의 역도 참이어서, 너희가 서로에게 더 많은 말을 써야 할수록, 서로를 아껴주는 데 들이는 기간은 아마 틀림없이 더 적을 것이다. 좋아하면 통하기 마련이기에.
사실 사랑이 깊다면 말은 불필요하다. 그리고 이 공리의 역도 참이어서, 더 많은 말을 너희가 서로에게 써야 할수록, 틀림없이 더 적은 기간 동안 서로를 아껴주게 될 것이다. 좋아하면 통하기 마련이기에.
Where there is deep love, words are virtually unnecessary. The reverse of this axiom is also true: The more words you have to use with each other, the less time you must be taking to care for each other, because caring creates communication.
너희가 이해하는 식의 정부나 법률 따위는 없다. 대신 대개 연장자들로 구성된 평의회 혹은 원로회의콘클라베(conclaves)가 있고, 너희 언어로 번역하면 ‘상호합의mutual agreements’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 원로회의라는 표현이 지혜로운 사람들의 합의체라기보다는 오래된 구성원이면 당연히 포함된다는 의미를 줄 수 있음.
몇몇 영적 운동세력들은 이것을 “놔두어라, 신이 알아서 하도록”으로 이해한다. 이것은 훌륭한 이해다.
너희가 (올)바르게 가고자 한다면 그냥 내버려둔다면. 너희는 결국 ‘길’에서 벗어날 것이다. 삶 자체라 불리는 과정이 ‘길’이다.
If you will just let go, you will have gotten yourself out of the “way.” The “way” is The Process― which is called life itself.
너희는 오늘 너희가 너희의 일용할 양식을 받았고, 너희가 너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해준 것 같이, 너희의 업과 너희의 죄를 용서받았다.
You are given this day your daily bread, and you are forgiven your debts, and your trespasses, exactly to the degree that you have forgiven those who trespass against you.
